
오픈 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구글(Google) 등 미국 주요 AI(인공지능)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의 ‘모델 복제’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이례적인 협력 체계 구축에 나섰다. 경쟁 관계에 있는 빅테크 기업들이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은 AI 산업에서 처음 있는 일로 평가된다.
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AI 모델 무단 복제 및 성능 탈취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정보 공유를 시작했다. 협력은 2023년 마이크로 소프트(Microsoft)와 함께 설립한 프런티어 모델 포럼(Frontier Model Forum)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핵심 대응 대상은 ‘적대적 증류(adversarial distillation)’로 불리는 기술 악용이다. 이는 기존 고성능 AI 모델의 출력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분석해 유사한 성능의 저비용 모델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원래는 기업 내부에서 모델 경량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사용되는 기술이지만, 외부에서 이를 활용해 경쟁 모델을 ‘복제’하는 사례가 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특히 경계하는 것은 일부 중국 AI 기업들이 고성능 모델의 응답 데이터를 축적해 자체 모델을 고도화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경쟁력 있는 AI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어 시장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중국의 AI 딥시크(DeepSeek)는 2025년 공개한 ‘R1’ 모델로 글로벌 AI 시장에 충격을 주었으며, 성능 향상 과정에서 증류 기술을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오픈AI는 최근 미 의회 제출 자료에서 일부 기업들이 자사 기술에 ‘무임승차’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앤트로픽 역시 중국 AI 기업들을 상대로 유사한 문제를 제기했으며, 구글 또한 모델 추출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업계는 이번 공동 대응을 기존 사이버 보안 협력 모델과 유사한 흐름으로 보고 있다.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공격 패턴을 공유하고, 위협을 공동으로 분석·추적하는 방식이다.
특히 AI 모델은 단순 코드가 아니라 데이터와 학습 결과가 결합된 형태이기 때문에, 한 번 유출되거나 모방되면 피해 규모가 훨씬 크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기술 탈취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매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기업 간 협력에는 법적 제약이 따른다. 미국 반독점법은 경쟁사 간 정보 공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공동 대응에 필요한 수준의 협력조차 쉽지 않은 구조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일정 범위 내에서 정보 공유를 허용하는 ‘면책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 기술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기존 산업 규제 틀을 넘어선 새로운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협력은 AI 경쟁이 단순한 기술·시장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에 이어 AI 모델 자체가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면서, 보호와 통제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모델은 한 번 탈취되면 되돌릴 수 없는 ‘디지털 핵심 자산’”이라며 “앞으로 AI 경쟁은 성능 경쟁을 넘어 ‘누가 더 잘 지키느냐’의 싸움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