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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생명력과 역사성의 상관관계
  • 김지면
  • 등록 2024-11-19 07:42:01
  • 수정 2024-11-19 08: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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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면 교수 

Doctor of Music Arts at California Arts University

https://www.academia.edu/111764415/ 

IT Director & Professor at California Arts University

Church of Faith Senior Pastor(M. Div)



오늘은 A.D. 4세기 이후의 세상 중에서 먼저, 313년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있었던 네 차례의 주요 종교회의와 이 와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중요한 종교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첫 번째가, 니케아 회의(325)입니다. 이 회의에서는 삼위일체의 정의를 내리는 문제가 주제였습니다. 

두 번째 회의는 콘스탄티노플 회의(381) 입니다. 이 때에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 문제가 주제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회의는 에베소 회의(431)인데 여기에서는 예수의 인성 문제에 다시금 논란이 일게되어 이를 정리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

네 번째 회의는 칼케톤 회의(453)로 삼위일체론을 정립시킨 회의였습니다. 


이후 2차 칼케톤 회의(553)와 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680) 등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오늘 살펴볼 회의는 바로 세 번째 있었던 에베소회의 입니다. 


에베소 회의에서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으로 있었던 네스토리우스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게 됩니다.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가 성자 하나님 이신 예수를 낳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을 운반하는 것인 로고스를 낳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성만 당한 것이고 신성은 동참하지 않았다 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인간 예수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면서 비로소 신성이 결합되었다고 하는 ‘우의결합론(友誼結合論)’입니다.   


네스토리우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으로 있던 시릴(376~444)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 있으며 로고스( λόγος ; 말, 말씀, 그리스 철학에서는 ‘이성’으로 사용하기도 함.)가 육신이 된 것은 마리아가 사람이신 신을 낳은 것이라고 반론을 펼치게 됩니다.(요한복음 1장)


물론, 당시 로마 교회도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이자 인간이신 예수를 낳은 마리아를 존경한 나머지 성모화하여 숭상하였고, 연옥설이나,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가 실제적으로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과 성상숭배 같은 문제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네스토리우스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기도 하여습니다. 


결국 에베소 회의에서는 시릴의 주장이 지지를 얻게되어 채택되었고, 네스토리우스와 그를 다르던 사람들은 이단으로 판결 받아서 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네스토리안으로 불리웠는데, 이후에도 포교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이단으로 정죄 받고 핍박 받는 것을 피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를 거쳐 유라시아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중국에까지 이르러서 포교활동을 합니다. 


실제로 7세기 경 중국에서 네스토리안이 경교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흡사 불교의 사찰처럼 생겼지만, 경교의 건물로 판명된 장소들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당대로부터 근 천년이 지난 명말(天啓 5년) 1625년, 중국 산시(陜西)성 서쪽 근교에서 큰 비석이 발견되었다. 그 비석은 높이 약 270 센티미터, 넓이는 약 1미터, 폭 30센티미터, 무게가 2톤 정도이며, 비석 위에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라는 비명이 새겨져있다. 경교비 정면은 전부 1,695자로 경교의 교리와 경교의 중국 전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비석의 양 측면에는 68명의 경교 선교사의 성명과 직위가 시리아어와 중국어로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비문 작자 경정(景淨: 페르시아인), 글쓴이 여수엄(呂秀嚴: 중국인)의 이름과 이 비석을 제작한 연대(唐德宗 建中2年1月7日: A.D. 781년 2월 4일)가 기록되어 있다. 후에 학자들의 고증을 통하여 경교가 기독교의 일파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 

한반도의 삼국 시대 당시 나당 연합이 고구려와의 전쟁에 파견된 당나라 인원 중에 경교 교인이 있어 신라에서 활동한 흔적이 경주 고분에서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새교회사 I]  정수영 목사  1991. 1.6. 도서출판 명현 1-3권 p.127) 


그렇다면 … 

어쨋건 간에 초기 기독교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도 들어왔었다는 말인데, 왜 초기 기독교는 불교처럼 오늘까지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근대에 들어서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일까요 ..? 


우선,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가장 핵심적인 이유를 보면, 경교는 당시 중국에서 상류층과의 교류에 힘썼습니다. 이는 일반 대중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중국 토착 문화와 불교 문화 등과의 타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불교와 경교가 외래 종교로서 탄압 받던 시기에 민중속으로 들어간 불교는 살아남았고, 경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네스토리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문제에 대한 교리가 온전한 복음과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날 기독교가 따르고 있는 것은 에베소 회의에서의 시릴이 주장한 내용 즉,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 있으며 로고스( λόγος ; 말, 말씀, 그리스 철학에서는 ‘이성’으로 사용하기도 함.)가 육신이 된 것은 마리아가 사람이신 신을 낳은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만약에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따랐던 경교가 오늘 날 아시아 및 한국에서의 기독교로 자리를 잡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불완전한 복음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 

에베소 회의 때 그의 주장이 모두 틀렸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앞서 제기된 성상숭배나, 마리아 숭배, 화체설 같은 문제를 바로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복음에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문제를 잘못 풀어낸 것이 문제의 핵심인 셈인 것입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 

인류의 막혔던 구원의 길을 여시기 위해 육신이 죄 값으로 산 제물로 오셨으면서 동시에 죄를 이길 부활을 위한 신으로서 오신 예수의 구속이 성립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것 처럼 .. 불완전한 복음이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또한, 그의 주장처럼 잉태 당시 인간으로만 태어나신 것이라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성경의 기록(마 1 : 18, 20)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태어나실 때부터 이미 성령과 함께 즉, 신성과 인성을 함께 하신 채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따라서, 네스토리안 교리는 생명력이 없는 복음으로,  당시의 주류 청치, 사회, 문화와 타협하면서 역설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짧고 한계가 있을 뿐이라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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